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6. 16世 〉6. <요재공>모헌공휘순필유사(慕軒公諱舜弼遺事)
1. 문헌 목록 〉16. 16世 〉8. <부정공>학생공휘신명가장(學生公諱新命家狀)
1. 문헌 목록 > 16. 16世 >  
7.<부정공>학생공휘중명가장(學生公諱重命家狀)
學生公諱重命家狀 府君諱重命字伯玉姓趙氏貫玉川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之後也泰仁公諱大承六代孫高祖通德郞諱義吉曾祖諱時耈祖諱維春考諱光耘妣濟州高氏慶華女諱東耘晋州鄭氏道寬女是本生父母也以景廟辛丑十二月二十日生府君天資粹美天性溫厚自幼克服先訓一以孝親敬長愛弟撫幼修身正家爲立心之本制事之要殫誠供職於兩庭備盡志體之養篤行定省之節每晨謁廟爐盒椅卓屛器遺衣遺書几櫝洗塵致潔淨掃門階而退爰及家事責兒孫讀耕之業考藏獲薪水之役無一怠荒廢務優得歲功於用天道因地利之本職可使饒喫着而有資奉祭祀接賓客之貽謨課日而讀書窮理以明當行之路恒戒兒曹曰古經千言萬語何莫非範俗垂世之至訓至若常棣篇中妻子好合兄弟湛翕父母安樂之風咏最吾所終身服膺者也汝等亦以體察而力踐焉則其於上奉下率承先裕後之道庶或不忒也云爾及遭外內艱盡哀盡禮竟至無憾於送終大事後居本生前後喪亦得情文備至一出於至性之本然每當喪餘之日必致如在之誠焉宗族因歎其宗子宗孫之愼終追遠必有天定之固然而非餘人所及也丙午六月十八日考終于寢享年六十六葬在皷岩洞奉事公塋下枕癸原配金海金氏斗彦女有壺範生戊申卒辛酉三月六日壽七十四墓祔育二男二女廷良廷仁女金璲光山人全州李埍妻孫奎祥璘祥文學行義幷有蔚譽灝祥長房出德祥河祥玉祥陽川許芢洪州李廷琦妻次房出曾玄以下不盡記嗚呼夷攷府君之恭行則惟以報本飭躬宜家保族爲本分上至道莊重自持不求人知胸懷且冲淡時有嘯咏於東皐臨濯於淸流占得水竹淸閑之趣悠然有出塵之想洪根在玄孫之列序及遷奉祀事誠蔑力窮享不及儀罪莫大焉謹述嘉言善行之載在家傳與興傳頌者俾爲家狀一本用作來百世徵信立言家採擇之資云爾 玄孫 洪根 謹述 학생공휘중명가장(學生公諱重命家狀) 부군의 휘는 중명(重命)이요, 자는 백옥(伯玉)이며, 성은 조씨이며 옥천부원군 충헌공 휘 원길(元吉)의 후손이다. 태인공(泰仁公) 휘 대승(大承)의 六세손으로 고조는 통덕랑 휘 의길(諱義吉)이며, 증조는 휘 시구(時耈)요, 조의 휘는 유춘(維春)이며, 고의 휘는 광운(光耘)이고 비는 제주고씨 경화(慶華)의 딸이며, 휘 동운(東耘)과 진주정씨 도관(道寬)의 딸은 부군의 본생 부모였다. 경종(景宗) 신축년(一七二一)十二월 二十일에 부군이 태어났는데 자질이 맑고 아름다우며 성품이 온화하고 두터워 어려서부터 선훈에 복종하여 한결같이 어버이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아우를 사랑하고 어린이를 어루만지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하는 것으로 마음을 세울 근본과 일을 처리한 법칙으로 삼고, 살아계신 양가의 부모에게 뜻과 몸의 봉양을 갖추어 정성을 다하였으며, 또 정성(定省)의 절차를 독실히 행하고 매양 새벽에 사당에 참알하여 화로, 향합, 탁자, 병풍 등 모든 기물을 깨끗이 소제하고 물러나와 집안 일에 대하여 아손(兒孫)의 學業을 주의 깊게 살피고 노복(奴僕)들의 땔나무하는 것과 물긷는 일까지도 감독하여 한 가지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거칠게하여 맡은 바 일을 폐한 일이 없도록 하고 넉넉히 세공(歲功)을 얻어 천도(天道)와 지리(地理)의 본직으로써 먹고 입을 자본을 넉넉히 가지고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한 법을 나날이 가르치며 글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밝혀 항상 아손을 경계하되, 『옛날 가운데 천언 만어가 세속의 규범이 아닌 것이 없고 또 詩經의 상체편(常棣篇) 가운데 처자호합(妻子好合), 형제담흡(兄弟湛翕), 부모안락(父母安樂)이란 구절은 내가 평생토록 가슴에 새긴 바이다. 그러니 너희 무리 또한 몸소 살피고 힘써 행하면 위로 받들고 아애로 거느리며 先代의 德業을 받들고 후손에게 물려줄 도리가 혹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외내 상사를 당하여 슬픔을 당하고 예제를 다하여 마침내 보내고 마친 큰 일을 여감이 없어 하고 그뒤 본생 외내 간을 당해서도 정성과 예절을 다 하였으니 이는 지성의 본면에서 나온 것이었다. 매양 탈상 후에도 반드시 계신 것 같은 정성을 다하니 종족들은 그 종자 종손의 마치기를 삼가하고 멀리 추모한 것은 반드시 하늘이 정해준 것이 있어 진실로 그런 것이니 다른 사람의 미칠 바가 아니라 하였다. 병오년 六월 十八일에 향년 六十六세로 정침에서 별세하니 고암동(皷岩洞) 봉사공(奉事公) 묘하(墓下) 침계원(枕癸原)에 안장하였다. 배는 김해김씨 두언(斗彥)의 딸로 부덕이 있었고 무신년에 태어나서 신유년 三월 六일에 춘추 七十四세로 별세하니 묘소는 부장하였다. 남은 정량(廷良), 정인(廷仁)이요, 여는 광산 김수와 전주 이운의 처며, 손자 규상, 인상은 문학과 행의로써 명성이 있고, 호상은 장방출이요, 덕상, 하상, 옥상, 양천허인, 홍주 이정기의 처는 차방출이며 증현 이하는 모두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 부군의 지행을 바르게 상고하면 오직 태어난 자기 근본에 보답하고 몸을 닦으며 집을 편안히하고 겨레를 안보함으로써 본분상 지당한 도리를 삼고 몸가짐을 壯重하게 하여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의지가 통활하여 때로는 동편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물에 가서 수족을 씻으며 물과 대의 맑고 한가한 지취를 죄다 차지하니 멀리 띠끌 세상을 벗어난 기상이 있었다. 홍근(洪根)이 현손의 계열에 있어 제사를 옮겨 모시게 되었지만 정성이 없고 힘이 궁하여 향사가 제의(祭儀)에 미치지 못하니 죄스러울 뿐이다. 삼가 집안에서 전하고 향방이 전송한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을 기록하여 가장을 삼고 오는 백세에 증거하여 입언가의 채택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현손(玄孫) 홍근(洪根) 삼가 기술함
 
1. 문헌 목록 〉16. 16世 〉6. <요재공>모헌공휘순필유사(慕軒公諱舜弼遺事)
1. 문헌 목록 〉16. 16世 〉8. <부정공>학생공휘신명가장(學生公諱新命家狀)